이영지 작가 개인전 ‘속닥속닥’
6월 4일까지 아트소향서 전시
나무 지탱하는 가지의 강인함
‘응원군’ 같은 새·나비 등 등장
작가·관객 모두에게 ‘치유’ 제공
이영지 '우리 만날까'. 아트소향 제공
“한 점 한 점이 그림 그리는 저 자신을 치유했습니다.”
이영지 작가의 그림은 따뜻하다. 큰 나무와 귀여운 작은 새가 있는 그림에는 인생이 들어있다. “조그만 에스키스(밑그림)에서 시작했어요. 펜으로 그냥 점과 선을 이어 나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어 있었어요. 내 모습 같았죠.” 작가는 아무것도 아닌 ‘0’에서 시작해도 어느 순간 ‘100’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림 속 나무는 풍성한 잎에 비해 줄기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가늘다. “가늘지만 수많은 잎을 받치고 있는 가지에는 생을 버텨내는 힘, 강인함이 숨어있어요.” 나무로 시작해 3년쯤 뒤 그림에 새가 등장했다. “그림을 그리며 힘든 마음에서 조금씩 벗어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날 수도 있고 걸어갈 수도 있는 새를 의인화시켜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신 새의 표정은 그리지 않았다. “새에 대한 해석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뒀어요.”
이영지 작가는 그림으로 소소하지만 소중한 감정을 그림에 담아낸다. 오금아 기자
새가 날개에 풍선을 매단 장면이 보인다. “나도 날갯짓을 그만하고 쉬고 싶으니까, 새라도 좀 편하게 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날개가 없는 새는 주변에서 모든 것을 대신 다 해주는 상황을 연상했어요.” 작업실 에어컨이 고장 난 날은 케이블카 위에 새들을 옹기종기 태워 시원한 곳으로 보내줬다. “그림을 그리는 제가 재미있어야 오래 작업을 이어갈 수가 있거든요.”
새는 관계의 의미도 가진다. 정다운 새 두 마리를 멀리서 혼자 지켜보는 새가 있다. 이 작가는 ‘부모의 모습’이라고 했다. “항상 지켜줄 테니 ‘너의 행복을 누리라’고 응원하는 느낌이죠.” 최근에는 나비나 벌 같은 친구들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전시장 중앙에 걸린 다섯 개의 나무 연작은 나무만으로 표현하던 초기 작업 시기를 떠올린 작품이다. “뭔가 그려 넣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어요. 먹선으로 분위기만 살리고 일부러 새도 작게 그렸어요.”
이영지 '봄바람이 불어와'. 아트소향 제공
이 작가는 장지에 아교포수를 하고 먹 작업을 한다. 그는 회벽 느낌을 내고 싶어 붓을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했다. 분채 채색 아래로 바탕의 질감이 살아나는 이유다. 짙은 푸른색에 반짝이는 윤슬을 표현한 그림과 초록 풀밭의 풍경도 매력적이다. 올해 처음 시도했다는 배경의 그라데이션 작업도 눈길을 끈다.
특히 이번 전시작에는 초승달이 자주 등장한다. 대학원 때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딸(작가)에게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숨을 쉬고 마음을 내려 놓아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게 아빠의 유언이 되었던 거라서 밤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20년도 더 된 일인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어 용기를 내어 달을 예쁘게 그려보기로 했어요. 내 마음에 ‘달이 너무 예쁘네’ 생각이 들도록, 그렇게 해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이영지'눈물나게 니가 보고 싶을 때'. 아트소향 제공
커다란 초승달 안, 나무가 자라고 작은 집 위에서 새가 하늘을 본다. ‘그림 속에 봄날을 만들어 줄게’라고 그림이 말을 거는 듯하다.
이영지 개인전 ‘속닥속닥’은 6월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아트소향에서 열린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